[일다] 지구별에서 쫓겨난 기억을 부르다



지구별에서 쫓겨난 기억을 부르다
    
잊혀진 레즈비언 경험들

 
 

비오 기자
 2008-01-07 22:11:17 


사람들은 자꾸만 잊었다. 레즈비언이라는 나의 커밍아웃을, 그리고 동성애자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명제를. 그래서 그들은 거듭 물어왔다, “남자친구 없어?”라고. 간혹 그들은 “너는 여중, 여고를 나와서 그래”라고 단정지었다. 이성애자만의 지구별에서, 그들이 나를 마치 내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터일까, Y도 잊은 듯했다. 사귄다는 말은 없었어도 서로 좋아한다는 애틋한 교감으로 한 시절을 동행했다고 믿어왔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서는 우리가 사랑한 경험이 사라져 버렸나 보다.

뿐만 아니라 Y는 우리가 만났던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들’의 존재도 까마득히 잊었다. 나에겐 또렷한 우리들의 기억들이 Y에게는 없었다. 우리가 종종 레즈비언 커플 사이트에 들어가곤 했다는 것, 그리고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도 Y는 잊어버린 것일까.

때문에 내 기억의 사진첩에는 온전한 사진들이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 곳곳에서 Y를 도려내야 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을 망각한 것은, 지금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로 살고 있는 Y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라는 단어는, ‘함께’라는 수사는 Y의 동의를 필요로 했다.

레즈비언으로 받아들인 현재의 모습이 있기까지 나를 만들어온 경험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Y와의 교감을 두고, 내가 혼자 만들어낸 거짓말은 아닐까,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까라는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Y의 망각 앞에서 나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에 매달려야 했다.

‘선택’받지 못한 경험

드라마에도, 영화에도, 소설에도 온통 낭만적 이성애밖에 없는 이 사회에서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것만큼이나, 힘겨웠던 사랑을 모조리 잊는다는 것도 참 불가사의한 일 같다. 함께 보낸 한 시절이 너와 나에게, 이토록 다르게 기억되다니 말이다.

『레즈비언 선택』에서 저자 클로디아 카드는 누군가를 “레즈비언”이라고 구별해주는 것은 단순히 여자를 좋아했던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레즈비언 경험에 그녀가 갖는 애착도와, 이것에 대한 그녀의 태도”라고 말한다. 즉 레즈비언 관계를 비중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레즈비언 관계를 바탕으로 일상을 일구며, 레즈비언 경험을 향해 가능성과 상상력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에 동감했던 것은, Y처럼 많은 사람들이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였던 자신을 잃는 과정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교제 관계로만 침몰하며 자기 애인의 다른 레즈비언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했던 사람, 언젠가 결혼을 할 것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여성들끼리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

레즈비언에 관한 편견 없는 정보나 역할모델을 접하지 못했거나, 접할 수 있더라도 두려움으로 거부하며 끝내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여자를 좋아했던 기억은 그들로부터 저 멀리 사라져갔다.

Y가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말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녀의 교제나 일상들은 이성애 관계로 꾸려져 나가고, 자신의 삶에서 레즈비언 경험에 대한 가능성을 더 이상 열어두지 않고 있으니까. 그녀는 레즈비언을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레즈비언에 대한 오랜 편견처럼, 여자를 좋아했던 경험을 10대 시절 한때의 것으로 제쳐둔다 해도 괜찮다. 다만 나와 나눈 이끌림과 설레임, 그리고 그리움 같은 감정들을 남자를 좋아하는 지금에 와서 돌아봐도 ‘의미 있는 것’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랐던 것뿐이다.

잊지 않고 기억할 용기를 갖길

하지만 Y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너무 많이 잊었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 생각에 씁쓸해질 때면, Y의 망각과 반대로 나 자신은 잊혀졌던 기억들을 복구시켰지 않은가, 하고 자위한다.

나는 레즈비언으로 스스로 받아들이며 기억이 재구성되는 놀라운 경험들을 해왔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단짝친구가 남자애를 좋아하게 되자 공중전화 수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던 것,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아마 게이였겠구나 하는 것들이 이제와 새록새록 기억난다.

어렵사리 피어난 기억들은 힘이 된다. 이제 Y를 도려내버렸던 장면들도 복원시키려 한다. 그리고 평범하게 먹고 살고 평범하게 결혼해야겠다는 계획들에 치여 잊혀진, ‘평범하지 않던’ 어린 시절 Y의 꿈들도 내가 대신 기억해주려고 한다. 그건 내가 사랑했던 Y니까. 어쩌면 나를 열렬히 사랑했을 Y이기도 하니까.

우주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풍경. 어둠 속에 촘촘히 빛나고 있는 별들은 온통 이성애자뿐인 지구별에서 쫓겨나야 했던 동성간의 가슴 저림일 거라고. 그 중에 Y가 떠나 보낸 경험들도 있을 것이다.

Y, 너는 이 지구별 안으로 그 기억들을 소환할 수 있겠니. 하지만 Y가 할 수 없어도 괜찮다. 내가 불러올 테니. 지구별에 또다시 자라날 우리 같은 아이들이 ‘레즈비언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방황하지 않을 용기, 잊지 않고 기억할 의지를 갖기 바라며, 내 기억의 사진첩에 고이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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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경 | 2008/01/08 06:46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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